잡설 잡설

최근 조국 관련 수많은 의혹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중 절반 정도는 이미 알고 있던 것이고, 절반 정도는 새로 알게 된 것들이다. 조국의 실체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될수록 뭔가 기분이 묘하다. 답답한 기분과 시원한 기분이 계속해서 교차한다. 감춰졌던 진실이 까발려지는 것은 시원하지만, 이로 인해 한국 사회의 고장난 부분이 바로 잡힐 것 같지는 않아 답답하다.

이명박근혜 정권 때 서울대 민교협 교수들을 중심으로 시국을 개탄하는 여러 번의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그 성명서에 이름을 남긴 안면이 있는 몇몇 교수들이 떠오른다. 과거 박원순 딸의 법대 전과와 관련해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 조국 교수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전에 본인의 SNS를 통해 박원순 딸의 전과는 적법한 절차를 거친 것으로 어떠한 문제도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조국 교수는 법대를 대표할 직위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명백한 월권행위였다. 내가 떠올린 그 몇몇 교수들은 그 당시 사석에서 조국 교수의 행위를 비판했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그 비판을 공론화하지 않았다.

현재 조국에게 씌워지고 있는 혐의는 지금 감옥에 있는 이명박과 최순실을 연상케하는 수준이다. 나는 정말로 궁금하다. 조국이 이런 의혹들에도 불구하고 법무부장관에 임명되었을 때 (그간 문재인의 행태를 볼 때 십중팔구 될 것이다), 과연 그들이 또 다시 침묵을 할지, 아니면, 이명박, 박근혜, 최순실을 향해 날렸던 비판의 잣대를 본인들의 동료였던 조국에게도 그대로 적용할지. 눈 커다랗게 뜨고 지켜보고 있겠다.

(간만에 스랖에 들어가보니, 누군가 조국 교수 오피스에 포스트잇 붙이자는 제안을 했고, 벌써 누가 하나 붙였다고 인증을 했던데, 이참에 학생회 차원에서 조국 교수직 탄핵 운동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법대(로스쿨) 내에서야 워낙 무시를 많이 당해왔지만, 전 학교 차원에서 망신을 당해본 적은 - 아 최근에 있었구나... - 별로 없었으니, 그래도 조금은 쪽팔림을 느끼지 않을까나. 내가 강남좌파 본좌님의 강철양심을 너무 쉽게 보고 있는 건가?)

강남좌파를 꿈꾸는 이들을 위하여 잡설

0. 조국 법무부장관 지명자 관련 뉴스를 보고 있자니, 조국의 인생 자체가 '강남좌파가 되는 법' 101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기득권 계급이면서 동시에 대한민국 빈/서민들의 존경까지 받을 수 있는 "강남좌파"를 꿈꾸는 이들을 위해, 조국이 그간 걸어온 발자취를 간략히 정리해보고자 한다.


1. 1965년에 태어난 조국은 만 16세가 되던 해인 198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다. 본인에 따르면, 2학년때 친구들 앞에서 육법당(육군사관학교 및 법조인 출신이 많았던 당시 전두환의 민정당을 비꼬는 말) 무리 속으로 들어갈 수 없어 판검사가 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2. 조국은 86년 2월 학사 졸업 후, 바로 석사과정에 들어가 3년만인 89년 3월에 졸업한다. 이후, 당시 병역특례제도였던 "특수전문요원(일명, 석사장교)"으로 6개월만에 군복무를 마쳤는데, 이 제도는 전두환과 노태우가 본인 자식들에게 병역혜택을 주기 위해 만들었던 것으로 90년에 폐지되었다. 군부정권에 저항하기 위해 판검사는 포기했지만, 전두환/노태우가 만든 편법적 제도의 수혜를 받는 것은 포기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3. 조국이 학사와 석사를 마치는 동안, 그의 집안에서도 여러 변화가 일어났다. 그의 부친인 고 조변현씨는 1985년 웅동학원이라는 사학을 인수해 이사장이 되었고, 이후 고려종합건설이라는 건설회사의 대표가 되었다. 현재 많은 이들이 조국이 신고한 수 십억 대의 재산을 설명해준다고 믿고 있는 '금수저' 집안의 탄생 시점이라 할 수 있겠다.


4. 석사장교로 군복무를 마친 조국은 바로 서울대 박사과정에 입학해 2년 뒤인 91년 3월에 수료한다. 그는 이 무렵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에 가입해 활발한 활동을 했다. 사노맹은 군정을 타도하고 사회주의국가 건설을 추구한 단체로, 그 기반을 다지기 위해 노동자 무장봉기를 통한 사회주의혁명을 지도할 노동자당 건설을 목표로 89년에 조직되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조국이 노동자 봉기를 통해 사회주의국가 건설을 꿈꾸던 당시, 그의 부친이 건설사 대표로 있었다는 사실이다. 조국이 그의 부친이 운영하던 건설회사의 노동자들까지 선동 대상으로 봤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5. 조국은 박사과정 수료후 1년 뒤인 92년 3월 울산대 법학과 전임강사로 임용된다. 그러나 전임강사로 재직중 사노맹 가담혐의로 93년 5월에 구속되었고, 결국 11월에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이후, 울산대 전임강사를 그만 두고, 곧바로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6. UC 버클리 로스쿨에 진학한 조국은 95년에 LLM, 97년에 JSD를 취득한다. 참고로 그의 박사학위 논문 심사위원장은 필립 존슨(Phillip E. Johnson)이라는 인물인데, 그는 법학자가 아닌 창조론의 일종인 '지적설계론'의 창시자로 유명하다. 존슨은 조국이 석사학위를 받은 해인 95년에 <심판대 위의 다윈 (Darwin on Trial)>, 박사학위를 받은 97년에는 <열린 정신으로 다윈 깨부수기 (Defeating Darwin by Opening Minds)>라는 책을 출판했다. 전자는 한국에도 번역이 되어 창조과학회에서 교과서처럼 쓰이고 있다. 비유하자면, 필립 존슨은 본업인 천문학보다 환단고기 연구에 몰두한 송유근의 전 지도교수 박석재와 같은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7. 조국이 UC 버클리에서 유학하는 동안, 조국 집안에도 여러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 1996년 조국 부친이 운영하는 고려종합건설은, 역시 그의 부친이 이사장으로 있던 웅동학원과 웅동중학교 신축 공사 계약을 맺었다. 당시 웅동학원이 웅동면 면소재지에 있던 학교를 30분정도 떨어진 산 중턱으로 이전하면서 고려종합건설과 수주 계약을 했던 것인데, 당시 조국의 동생은 '고려시티개발'이라는 고려종합건설의 하청업체를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조국의 부친과 동생은 건설사를 차려 본인들이 운영하던 사학재단으로부터 사업적 이득을 취했던 것으로, 웅동학원과 고려종합개발의 관계는, 근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명지학원과 명지건설과의 관계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97년 IMF가 터지면서 고려종합건설은 부도를 맞게 된다. 당시 회사는 기술보증기금의 보증으로 은행권에서 대출한 9억 4천여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상태였다. 결국 그 빚은 기술보증기금이 대신 갚았다.
참고로, 원래 웅동중학교가 있던 부지는 2001년 남명산업개발이라는 지방 건설사가 낙찰받았다. 그 부지에는 현재 아파트 단지와 상가가 들어서 있다.


8. 97년에 UC 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조국은, 99년 울산대 조교수로 임용되었고, 이듬해에 동국대로, 그 해 말에는 다시 서울대로 자리를 옮겨 현재까지 교수직을 유지하고 있다. 2004년에는 부교수로 승진하면서 테뉴어를 받았고, 2009년부터는 로스쿨 교수가 되었다.
참고로, 그는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웅동학원 이사를 지냈으며, 현재는 그의 부인인 동양대 교수 정경심씨가 웅동학원 이사직을 맡고 있다.


9. 조국이 서울대에서 부교수로 승진할 무렵, 그의 동생은 고려시티개발을 정리하고, 2006년 코바씨앤디라는 회사를 새로 설립했다. 최근 나온 기사에 따르면, 그는 웅동학원에서 받지 못한 52억원 상당의 공사대금 채권을 코바씨앤디(42억원)와 그의 부인 조씨(10억원)에게 넘겼다고 한다. 이후, 코바씨앤디와 조씨는 당시 조국의 부친이 이사장, 조국이 이사로 있던 웅동학원을 상대로 공사비청구소송을 냈다. 이에 웅동학원은 (당연하게도) 해당 소송에 대응하지 않았고, 결국 법원은 2007년 2월 조씨와 코바씨앤디에 승소 판결을 내렸다. 웅동학원이 실제로 52억원을 코바씨앤디와 조씨에게 지급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확인된 사실은, 현재 웅동학원이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
참고로, 조국에 따르면, 조국 동생과 그의 부인 조씨는 이 무렵 이혼을 했다.


10. 2013년 조국 부친 조변현씨가 사망했다. 이 때 그는 기술보증기금에게 진 빚 약 42억원(원급 및 이자) 중 9억 8천 여만원을 변제하고, 32억원 정도의 빚을 남겨둔 상태였는데, 당시 부친의 재산은 21원이었다고 한다. 부친 사망 후 조국을 비롯한 상속인들은 상속된 재산 이상의 채무는 변제하지 않는 '한정승인'을 신청했다. 즉, 조국 및 다른 상속인들은 남겨진 32억원에 대한 채무를 면제받았다.


11.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조국은 초대 민정수석으로 임명되었다. 이 때, 조국 부친 사망 후 그의 모친 박정숙 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던 웅동학원의 세금 체납이 문제가 되었다. 당시 웅동학원은 약 2200 여 만원의 세금을 체납하고 있다가 문제가 된 후 체납된 세금을 완납했는데, 당시 박정숙 씨는 답변서를 통해,
- 전 이사장인 고 조변현씨의 장기투병으로 인해 여력이 되지 못해 납세를 하지 못했으며,
- 전 이사장이나 본인은 학교의 실질적 운영에 개입한 적이 없고, 학교를 통해 사익을 추구한 적이 없으므로
떳떳하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당시 이사직에 있었던 조국 부인 정경심씨 및 전 이사였던 조국의 재산은 54억원 정도였다.
조국이 밝힌 바에 따르면, 그의 모친의 재산은 예금 452만원이며, 현재 본인 아들의 전 부인인 조씨가 소유한 집에 월세(보증금 1600만원, 월세 40만원)로 살고 있다.


12. 2019년 8월 현재, 조국은 법무부장관 후보로 지명을 받았으며, 이후, 여러 가지 의혹을 받고 있다. 몇 가지만 살펴보면,
- 위장전입: 딸 위장 전입 의혹이 제기되자, "2005년 이전의 위장전입이므로 현 정부의 7대 인사배제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주장
- 차명의혹: 조국의 부인인 정경심씨가 임대인으로 조국 동생의 전 부인인 조씨가 임차인으로 계약된 서류에 대해, "임대인과 임차인을 헷갈려서 바꿔쓴 것일 뿐, 명의신탁이 아니"라고 주장
- 위장이혼: 조국 집안 및 조국 동생의 전 부인인 조씨가 맺고 있는 다양한 금전 관계(조국이 조씨에게 해운대 집을 매각, 조국 부인과 조씨가 임대차계약, 조국 모친이 조씨 소유의 빌라에 월세로 거주 등등)를 근거로 위장이혼 의혹이 제기되자, "자녀양육 문제로 교류하고 있을 뿐, 십 여년 전에 이혼해 현재까지 이혼상태에 있으며, 위장이혼이 아니"라고 주장
- 74억 사모펀드 투자: 민정수석이 된 직 후 신고한 본인 재산보다 18억 여원이 더 많은 74억 여원을 신생 사모펀드 회사인 코링크 PE라는 회사에 투자약정하고 현재까지 10억원 정도 투자. 문제는 조국이 투자한 '블루코어밸류업1호' 사업은 총 운영자금의 75%정도가 조국 및 조국 자녀들의 투자금이며, 이 사업의 투자 대상이 정부수주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는 교통신호제어기 개발업체라는 것. 이에 대해 조국 측은, "현재 투자수익이 마이너스이며, 사모펀드 투자는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

현재로 확인 가능한 것은 조국 집안의 재산이 거의 조국에게 몰빵되어있다는 사실이다. 조국 모친은 전 며느리 조씨 소유의 집에 월세로 살고 있으며, 그의 아들 역시 전 부인집에 기거하고 있다. 반면, 조국과 그의 부인의 신고된 재산은 56억원 가량이다. 이 재산이 부친인 고 조변현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면, 청와대로 들어오기 전 대학교수직 외에 다른 직업을 가져본 적 없는 조국과 그의 부인이 수 십억원 대의 재산을 어떤 방식으로 축적한 것인지, 또한 조국 동생과 그의 모친은 왜 10년도 더 전에 이혼해 남이 된 전 부인/전 며느리 조씨 소유의 집에 살고 있는 것인지, 등에 관해서는 아직까지 밝혀진 바가 없다.

청문회에서 '가슴 아픈 가족사' 따위의 핑게로 넘어가지는 않기를 바란다.


결론: 
1) 사학재단과 건설사를 동시에 운영한 부모 밑에서 자라, 2) 사회주의국가 건설 운동에 참여했다가, 3) 첨단 자본주의의 본고장 미국에서 유학한 후 교수로 임용되고, 4) 좌파정권의 대변인을 자처하는 동시에 수 십억 대의 재산을 축적했으며, 5) 정치권에 들어온 후에는 본인이 비판해 온 거의 모든 악습을 답습 중인 조국 법무부장관 지명자는, "강남좌파"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필히 모범으로 삼아야 할 이상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문재인의 백성 잡설

문재인 대통령이 방북 시 북한 주민들에게 90도로 인사를 한 것이 현지에서 화제가 됐다고 한다. 탈북자 김지영 씨에 따르면, "북한에서 대통령이라고 하면 우러러야 할 대상, 신처럼 모셔야 될 사람,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며, "문 대통령이 이번에 인사하는 걸 보면 북한 주민들이 너무 놀랄 일"이라고 한다. 뭐, 당연한 얘기다. 저 정도 신격화가 되어 있지 않으면 북한의 현 독재 체제가 유지될 수가 없다. 매체들과 인터뷰를 한 여러 탈북자들은 문 대통령의 폴더 인사가 수령 체제에 익숙한 북한 주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충격은 북한 주민만 받은 게 아닌 듯 싶다.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 수령님을 어떻게 모시는지 여과 없이 지켜본 남한 주민들은 그제서야 자신들이 문재인 대통령님을 얼마나 무례하게 대했는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반응은 즉각 표출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프레스센터에 들어서 국민들에게 폴더 인사를 하는 모습을 "무례하게도" 의자에 앉아 사진만 찍고 있는 기자들을 보며, 한 남한 주민은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자 다른 주민들도 이에 동조하기 시작한다.



문 통령의 백성이 된 이 남한 주민들을 보고 있으니, 현재 성폭행범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계신 한 영화 감독님의 옛 발언이 떠올랐다.



남북한은 이렇게 하나가 되어 간다.






"예능인문학" 비판? 잡설

출판 전문 잡지인 <기획회의>에서 최근 "예능인문학" 비판 특집호를 냈다는 소식을 건너듣고, 반가운 마음에 (배보다 배꼽이 더 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으로 책을 주문했는데, 3일만인 오늘 도착했다 (이런 잡지는 왜 전자책을 내지 않는지 모르겠다. 비용이 많이 드나?).


사실 이 책을 굳이 구매까지 한 이유는 강양구 씨의 유시민 비판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내가 강 씨의 글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과거 황우석 사태 때 그가 쓴 기사들은 마치 가뭄에 내리는 몇 방울의 빗줄기 같았기에, 그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신뢰가 아직 강하게 남아있다. 더해서, '지식 소매상'으로서의 유시민에 대해서는 나 역시 비판적이고, 언제 한 번 관련된 글을 써볼까 싶기도 했기 때문에, 강 씨의 이번 글은 읽기 전부터 무척 반가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큰 기대는 곧 큰 실망으로 돌아왔다. 그는 길지도 않은 지면의 상당부분을 유시민이라는 '유명인'을 비판해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하는 데 낭비해버렸고, 비판 역시 구체적이고 날카로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심지어 마지막 문단을 보고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할 얘기가 한둘이 아니지만 지면 사정 때문에 여기서 멈춰야겠다. 한때 유시민의 팬이었던 사람으로서 간곡히 당부한다. 지식 소매상 역할을 제대로 할 생각이 없다면 그냥 예능 방송이나 열심히 하시라. 책 안 내도 먹고살 만하지 않나.

'지식 소매상'으로서의 유시민이 문제라면, 그 말은 그가 만들어 내는 콘텐츠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그 콘텐츠가 책이라는 매체를 타고 대중으로 흘러가든, 방송이라는 매체를 타고 대중으로 흘러가든 그게 문제를 야기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아니, 오히려 책보다 방송이 훨씬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영향력은 훨씬 크면서 책임은 훨씬 작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은 쓰지말라면서 예능 방송이나 계속하라니, 이게 말인가 방구인가.

강양구 외에 섭외된 다른 필진들의 글도 대체로 기대 이하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장 심각한 것은 스스로 '인문학자'라 칭하고 있는 김경집 씨의 글이다. 그는 최진기를 비롯한 "예능인문학자"를 비판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상 그가 비판하는 대상은 "예능인문학"이 아닌 그 비판자들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우선 최진기 등의 스타들에 대해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믿는다. ... 대중들에게 인문학의 즐거움을 선사한 그들의 노고를 의도적으로 깎아내려는 치사한 짓은 경멸한다. ... 그들이 따먹은 열매에 대해서만 질시할 게 아니다. 최진기 등이 진화할 수 있는 한계가 엄연히 존재한다. 물론 자기 벽을 깨뜨리고 그들이 진화하는 건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할 수 없는 진화의 영역이 존재한다. 이제는 그 영역을 비판자들이 채워야 할 때다. 그게 없으면 모든 비판은 공허하다.

김 씨가 그간 출판한 책들을 보면, "예능인문학" 비판자들에게 그가 이런 일갈을 날리는 게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그는 이런 책들을 썼다. <인문학은 밥이다>, <엄마 인문학>, <김경집의 통찰력 강의>. 즉, 김 씨는 최진기 같은 스타에 의해 유지 확장되고 있는 "예능인문학" 생태계의 일원이다. 이런 이를 왜 "예능인문학" 비판 기획에 섭외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황교익을 비판한 노정태의 글 역시 고구마 몇 개 분량의 답답함을 선사한다. 황교익만큼 쉬운 상대가 있겠나 싶었지만, 노 씨에게는 별로 쉬운 상대가 아니었나보다. 혼밥하는 걸 "사회적 자폐"라고 비판하는 황 씨가 한국인의 "소셜 푸드"인 떡볶이를 비판하는 건 아이러니하다는 노 씨의 인신공격성 남의 다리 긁는 소리를 읽고 있자면, 헛웃음이 나온다.
[떡볶이는] 바로 우리 한국인의 '소셜 푸드'인 것이다. 떡볶이를 맛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황교익의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다들 모여 즐기는 떡볶이 타임에 인상을 쓰고 앉아 있는 사람이 다른 이에게 '사회적 자폐'를 운운하는 것은, 다소 아이러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이 특집호에서 건진 것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김겨울은 채사장의 <지대넓얕>이 가진 내용상의 오류 몇 가지를 구체적으로 짚고, 그러한 오류가 사소한 것이 아님을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다.
위에서 지적한 점들이 시시콜콜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채사장의 저서가 얇다는 뜻이다. 학문의 깊이는 섬세함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 책 뒤표지에는 앞서 말한 문구 위에 한 줄의 문구가 더 있다. "중요한 것은 전문 지식이 아니다." 전문 지식이 어떻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소통을 위해 꼭 필요한 넓고 얕은 지식"은 전문 지식으로부터 나온다. 쉽고 넓은 지식만을 중요시하고 전문 지식을 폄하 할 때, 그 쉽고 넓은 지식의 기반 역시 붕괴할 것이다.

가장 인상 깊은 글은 출판평론가 김성신 씨의 글이다. 그는 출판과 미디어라는 두 개의 매체가 얼마나 다르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몇 가지 예를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주면서, 출판에 비해 미디어가 저질 인문학 콘텐츠에 훨씬 취약하다고 주장한다. "예능인문학" 시장과 관련해 출판과 미디어의 생리와 메커니즘을 좀 더 구체적으로 비교하는 작업은 유의미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기획회의> 특집호는, 얻은 것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크게 실망스러웠다. "예능인문학"에 대한 비판은 "인문학"이라는 용어의 대중적 남용을 지적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현대 학문 체계에서 인문학이라는 분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철학, 역사, 문학, 과학만이 존재할 뿐. 예능에 출몰하는 잡지식인들이 '인문학'이라는 용어를 선호하는 데에는 자신을 모든 지식에 능통한 것처럼 포장하려는 의도 외에 전문가들의 비판을 피하고자 하는 속셈도 숨어있다. 유시민이나 최진기 같은 "예능인문학자"들은 TV나 책을 통해 역사, 경제, 정치에 관해 온갖 설을 풀지만, 스스로 역사가, 경제학자, 정치학자로 명명하지 못한다. 그렇게 하는 순간, 전문가들의 비판/검증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학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문학(자)' 따위의 용어를 쓰며, 전문가들의 눈을 피하는 것이다. '인문학적 지식" 운운하며 스스로 "인문학자"임을 자처하는 이들은 열이면 열 아는 것도 모르는 것도 없는 잡(지식)놈으로 보면 된다.

니들이 역겨운 이유 잡설

황우석 사태가 터진 직후인 2006년 말경 서울대 민교협 소속 교수들은 서울대 내 연구윤리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데 합의하고 관련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관악모둠강좌 - 진리탐구와 학문윤리>라는 학부 과목을 개설했다. 이는 단지 이공계생을 위한 연구윤리 교육이 아닌, 전 전공분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문과 관련한 전반적인 윤리교육에 가까웠다. 예컨대, 법대(현 법률전문대학원) 조국 교수는 표절에 관한 강의를, 수의대 우희종 교수는 황우석 사태 및 광우병 관련 문제를, 의대 김옥주 교수는 비윤리적인 인체실험의 역사를, 공대 이경우 교수는 공학윤리를, 생명과학부 이준호 교수는 실험실 윤리를 강의했다. 학내 여러 "스타" 교수들이 강사진에 포진해 있었기 때문에 정원이 200명 이상인 대형강의였음에도 수강 대기자가 늘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수업을 개설하는 데 주요 멤버로 참여했던 김진수 전 서울대 화학부 교수와 관련한 뉴스를 오늘 접했다.



요약하자면, 국가에서 연구비를 받아 수행한 연구의 특허를 자신이 설립한 회사인 "툴젠"으로 빼돌렸다는 의혹으로, 대표적인 연구윤리 위반 사례라 할 수 있다. 서울대와 검찰청 등에서 조사를 진행중이라고 하니, 곧 결과라 나오리라 기대한다. '진리탐구와 학문윤리'수업은 아직도 매학기 개설되고 있던데, 만약 김 전 교수에 관한 의혹이 사설로 드러난다면, 김 전 교수와 학문윤리 강의를 함께 만든 현 강사진은 동료의 연구윤리 위반 사례를 강의 커리큘럼에 포함시켜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그리 낯설지는 않다. '성장'보다는 '분배'에, '자유'보다는 '평등'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현 '진보진영'의 역사는 사실 아이러니의 역사다. 이미 영국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들이 겪은 바 있는 계급고착화, 일명 '사다리 걷어차기'를 가속화하는 데 일조한 고시제 폐지나 수시제 확대 등의 주요 정책이 대부분 '진보' 정권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에 더하여, 과거 조국의 개천용 발언이나, 최근 논란이 된 장하성의 강남 예외론 발언 등은 고착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계급의 사다리 위에서 그것을 걷어차고 싶어하는 이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드러낸다.

소설가 이청준은 <당신들의 천국>에서 운명을 함께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사랑은 위선일 수 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반대로 말해, 진정한 사랑은 그 대상자의 운명에 동참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강남좌파들은 가난한 자들이 왜 자신들이 아닌 보수진영에 투표하는지를 늘 궁금해왔다. 그 답은 저들이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를 확인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장하성의 이웃은 최저시급으로 생활해야 하는 가난한 서민이 아닌, 같은 아파트 주민 홍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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