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 & 소방차 감상

로맨틱 코미디 <Music and Lyrics>의 인트로인 휴 그랜트가 이름을 날리던 시절의 밴드 PoP! 뮤비 장면을 가끔씩 찾아보곤 하는데, 간만에 유튭으로 감상하다 갑자기 추억의 밴드 소방차가 떠올랐다. 잠시 두 밴드를 비교해보자.

먼저 PoP!


그리고 소방차

안무도 그렇고 노래 멜로디나 가사도 그렇고, 영국이나 한국이나 쌍팔년도 감성은 비슷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상원 아저씨 요새 활동하시는 것 같던데... 소방차의 이상원을 주인공으로 한국판 <Music & Lyrics>도 가능하려나? ㅎㅎ
  

메갈형 페미니즘 vs. 한남형 반페미니즘 잡설


이것을 풀어 설명하자면 '남성 중심'의 사회는 오랜 시간 '가부장적 질서'하에 공고한 여성 혐오 연대를 구축해 여성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을 쥔 채 그들을 억압/핍박해 왔으며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그것이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인 상태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가설은 사실 음모론에 불과하다. 필자는 이를 일종의 페미니즘 신화(feminism myth)라고 생각한다. 
여성혐오의 일상적 반례들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무수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이나 소설과 같은 가상 현실 속에서도 여자 주인공 혹은 여자 캐릭터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남자 캐릭터들은 찬사의 대상이 되고 멋있게 묘사된다. 반면,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여자 캐릭터를 이용(예 <데스노트> 야가미 라이토)하거나 사리사욕의 대상(혐오 기제)으로 써먹는 남자 캐릭터들은 대부분 악역이거나 반사회성 성격장애를 지닌 싸이코로 나온다.
즉,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선은 '혐오', '멸시' 따위가 아닌 '보호'이자 '배려'였으며, 여성은 남자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남성성을 인정받기 위한 최종적 '주체'가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메갈형 페미니즘" vs. "한남형 반페미니즘" 진흙탕 개싸움에 발을 들이고 싶은 생각은 눈꼽 만큼도 없지만, 간만에 견적 안 나오는 헛소리를 본 이상 그냥 지나가기는 어렵다.

위의 칼럼(?)을 읽으며, 떠오른 책이 한 권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포겔과 스탠리 앵거만이 쓴 <Time on the Cross: The Economics of American Negro Slavery> (1974)이다. 포겔과 앵거만은 계량경제학 방법을 미국 노예제 연구에 적용해 미국 노예제에 대한 기존의 역사적 연구를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그들은 남북전쟁 이전 남부 노예제의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당시 남부 흑인 노예들은 노예주와 사실상 상호호혜적인 관계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즉, 노예주들은 그들의 귀중한 '재산'인 자신의 흑인 노예들을 꽤나 소중히 다뤘고, 그들에게 당시 북부의 자유 노동자들과 비슷한 수준의 의식주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노예주들에게 노예는 착취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보호의 대상에 가까웠다.

포겔과 앵거만의 주장대로, 남부 노예주와 그들의 노예가 상호호혜적 관계에 있었고, 전자가 후자를 착취보다는 보호했다면, 그 둘은 평등한 관계에 있었다고 할 수 있을까? 천만에. 보통 이런 경제 시스템을 가부장적 경제(paternalistic economy)라고 부른다. 가부장을 중심으로 한 가족 시스템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잘 돌아가는 집안의 가장은 자신의 부인이나 자녀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가족을 보호하고, 그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를 위해 그는 가족 구성원 각자에게 적절한 임무를 부여하고, 그들이 그 일을 잘 수행하면 상을, 그렇지 않으면 벌을 내린다. 한편, 다른 가족 구성원들의 유일한 의무는 가부장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다. 

결국, 가부장제는 권력의 위계를 전제로 만들어진 시스템이고, 이런 시스템에서 '보호'와 '착취'는 가부장이 가진 권력의 양면이다. 즉, 가족 구성원이 가장의 권위에 절대 복종하는 경우, 가부장과 가족 구성원은 보호자-보호 대상자의 관계에 있지만, 가부장의 권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그 관계가 착취자-피착취자 관계로 쉽게 뒤집힌다. 노예주-노예 관계도 마찬가지다. 노예가 노예주의 권위에 절대 복종하는 상황에서는 노예주가 노예의 보호자가 되는 것이 본인 뿐 아니라 그가 통제하는 경제공동체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예가 노예주의 권위에 도전할 때, 가부장제 하에서 노예주가 가진 옵션은 보호자가 아닌 착취자/억압자가 되는 것 뿐이다.

간단한 얘기를 위한 사설이 너무 길었다. 남성과 여성의 기본적인 관계가 보호자-보호대상자이지, 혐오자-혐오대상자가 아니라는 위 칼럼(?)의 주장은 (아마도 글쓴이의 의도와는 반대로) 사실상 현 사회가 남녀 관계의 측면에서 여전히 가부장제에 놓여 있다는 것은 자인하는 것이다. 남성이 여성을 보호 대상으로 보는 건 여성이 남성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것에 복종할 때 뿐이다. 그렇지 않고, 여성이 남성을 '한남충'이라 부르며 그들을 무시할 때도 남성들이 여성들을 보호 대상으로 볼까? 그럴리가. 그때 그들이 선택하는 건 자신들의 권위를 인정하는 '성녀'와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창녀'를 구분하고, 후자를 억압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미소지니(misogyny)'의 본래 의미다. '미소지니'를 '여성혐오'라는 부적절한 용어로 번역을 하니, 견적도 안나오는 '메갈형 페미니즘'과 '한남형 반페니즘' 간의 개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잡설 잡설

1.
박기영 교수가 스스로(?) 물러났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가 썼다는 사퇴의 변(?)을 보았다. 억울해서 눈물까지 흘렸다던데, 역시 사람은 자기기만의 동물인 것인가. 저 정도로 뻔뻔하면 세상 살기는 참 편하겠단 생각이 든다.


2.
악플과 건설적 비판을 구별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 인간은 타락하게 되는 듯 하다. 아니 타락은 훨씬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고, 그건 그저 '요단강'을 건넜다는 일종의 징후일 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잘못이나 한계/약점이 드러났을 때 그걸 솔직하게 인정하는 건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내야 하는 용기기도 하다. 뭐, 자기 자신을 지키고 싶어하는 이가 얼마나 있는지 요새는 좀 회의가 들긴 한다. 그거 지킨다고 누가 '돈'과 '인기'를 주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3.
늘어나는 파일철을 이제는 주체하기가 힘들어 해결 수단으로 12.9인치 아이패드 프로를 구입했다. 가격도 만만치 않고, 기계치인데다가, 애플에 대한 왠지모를(?) 반감도 있어서 구입을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을 하고 말았는데.... 근데 이게 사고 보니 너무 편하네? 컴퓨터 화면으로 글 보는 걸 힘들어하는 편이라 특히 논문은 언제나 프린트를 해서 봐야했는데, 화면이 커서 그런지 아이패드로 논문 보는 게 생각보다 편하다. 게다가 필기도 종이에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앞으로 논문 프린트할 일은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파일 정리의 용이성은 말할 것도 없고. 기기를 세팅하다가 애플 회사에 대한 반감은 한층 더 높아졌으나, 아이패드는 미워할 수가 없다. 그래, 회사와 애플빠들이 싫을 뿐이지, 패드가 뭔 죄가 있겠냐.


4.
최근에 필라델피아에서 며칠 머물다왔다. 일하러 간 거라 낮에는 도서관에 처박혀 있어야 했으나, 다행히(?) 도서관 문을 4시 반에 닫는 바람에 이래저래 도시를 구경할 시간은 충분했다. 필라델피아는 치즈와 록키 촬영지로 유명하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미국혁명(독립전쟁) 당시의 수도라는 건 모르고 있었다 (무식은 자랑이 아니라는데...). 머문 숙소가 올드 시티 중심부라 도시의 옛 정취는 실컨 느낀 것 같다.

숙소 바로 앞에 있어서 유명한 곳인지도 몰랐던 미국혁명박물관(Museum of the American Revolution)을 마지막날에 들렀는데, 여기가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미국혁명에서 여성, 흑인,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부분들이 재밌었는데, 특히 두 여성의 일화가 내 눈길을 끌었다. (사진 편집이 안 되어서 그냥 옆으로 올린다.)


아비게일 애덤스: 당시 영국 왕이었던 조지 3세의 폭정은 남자들이 폭군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주장. 남성은 폭력적이고 감정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여성 없이는 이성과 자유의 수호가 불가능하다고 역설. 한마디로, 영(국)남충과 미(국)남충을 넘어 일(반)남충을 선구적으로 주장하신 분이라 할 수 있음.


엘리자베스 프리먼: 미국혁명 당시 노예였던 분으로, 어느날 아침, 미국 독립선언서가 공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선언에 의해 자신도 자유인이 되었다고 주장했다가, 같이 있던 (안?)주인에게 프라이팬으로 얻어 맞으셨으나, 변호사를 고용해 그 주인과 법정 싸움을 벌여 결국 승소하신, 말콤 엑스와 마틴 루터 킹의 포스를 가볍게 눌러주시는 대단한 포스의 소유자. 초상화에서도 그 카리스마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 외에도 재밌는 전시물들이 많았으나.. 포스팅하기 귀찮은 관계로 생략.


마지막으로 록키 트레이닝씬의 상징인 필라델피아 미술관 사진 몇 장.

록키의 영향으로 필라델피아 미술관 앞마당은 여전히 운동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록키와 별로 닮지 않은 록키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록키팬(?)들


필라델피아 미술관을 명소로 만든 장면이자, 록키 시리즈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


박기영이라... 잡설

청와대가 황우석 시즌2를 찍고 싶은 모양.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는 애초에 없었으나, 이런 짓을 하리라곤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역시 현실은 나의 빈곤한 상상을 가볍게 뛰어 넘는다.

이 참담한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이가 조국이다. 현 청와대 민정수석인 그는 과연 이 사태를 묵인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힘을 보태고 있는 걸까. 황우석 사태가 터진 후, 교내 연구윤리 교육이 절실하다고 판단한 서울대 민교협 소속 교수들은 학부생을 대상으로한 대형 연구윤리 교양강좌를 개설했고, 그걸 주도했던 교수들 중 하나가 조국이었다. 그 자신도 그 강좌에서 표절에 관한 강의를 매학기 담당했고. 그랬던 그가 황우석 사태의 주범 중 하나인 박기영을 재임용하려는 청와대의 고위인사들의 인사검증을 총괄하는 자리에 앉아있는, 이 뭐라 말할 수 없는 아이러니. 다른 민교협 교수들은 이 사태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려나.

문재인이 노무현의 적통은 적통이다.

잡설 잡설

1.
글을 쓰다 보면, 내가 글을 컨트롤하는 건지 글이 나를 컨트롤하는 건지 헷갈리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글을 쓰기 전 대강의 구조와 전개를 미리 머릿속에 떠올리지만, 글이 그대로 진행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애초에 생각한 결론과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재밌는 건 글을 쓰는 와중에 내가 그 논리에 설득이 된다는 것. 분명 글을 쓰고 있는 건 난데, 내가 쓰고 있는 글이 나를 설득하고 있는 그런 상황을 겪고 나면, 기분이 참 묘해진다.

최근에 쓴 서평이 그런 경우였는데, 몇 가지 문제가 있긴 했지만, 읽을 때는 관점도 흥미롭고 논지도 납득이 가서 장점 위주로 서평을 쓰려고 마음먹고 있었으나, 쓰고 보니 엄청난 혹평이 됐다. 서평을 쓰던 과정을 되돌려 생각해보면, 두드러지는 단점을 하나 지적하고 장점으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 단점을 쓰는 와중에 왜 그런 문제가 발생하게 됐는지가 보이게 됐고, 그걸 또 논리적으로 설명하다보니, 결과적으로 서평이 눈에 보이는 단점 하나에서 출발해 저자의 잘못된 전제와 전략을 지적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던 것 같다. 내가 글을 쓴 게 아니라 글의 논리가 날 원치 않는 방향으로 이끌어 간 느낌. 내가 쓴 서평을 읽으면, 내가 책에 대해 느꼈던 처음의 인상과 너무 달라서, 다소 생경하게 느낌이 든다.

그러고 나니, 왠지 저자에게 미안해져서, 주석에다가 - 사실 까고 싶어 깐게 아닌데, 이것 참 저도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요. 책은 재밌게 읽었어요...라고 쓰고 싶은 심정. -_-;;; 그러고보면, 내 글을 혹평을 했던 수많은(?) 이들도 사실 내 글을 그 정도로 싫어했던 건 아니지 아니었을까, 하는 정신승리.....는 하면 안 되겠지..;;;


2.
일 하나를 마무리하면, 예상치 못한 다른 일이 들어오는 그런 정신 없는 나날을 보내다 이제 좀 한가해지나 싶었더니, 벌써 방학이 끝나가고 여름도 끝나간다. 이번 여름엔 공원 산책을 좀더 자주 즐기려 했는데, 별로 그러지도 못해 아쉽고, 운동을 별로 못해서 조금씩 다시 내 리즈 시절로 돌아가려 하는 뱃살들을 보면, 한숨도 좀 나오고, 그렇다.

그래도 바쁜 와중에 큰 모니터도 사고, 책장도 하나 사서 서재 세팅을 좀 바꿨더니, 일할 맛은 난다. 13인치 노트북의 작은 화면에도 별 불만은 없었는데, 눈이 조금씩 침침해지는 것 같아서 우연히 전자제품 매장에 들렀다가 내 눈길을 끈 27인치 커브드 모니터를 하나 구입했다. 모니터가 크니 파티션을 나눠도 마치 모니터 두개를 붙여놓고 쓰는 기분이 든다. 진작에 살걸. 문제는 큰 화면이 생기니 전보다 영화와 드라마를 더 많이 보게 된다는 건데.... 뭐 차츰 줄어들겠지..?


3.
살짝 어설프나, 뭔가 중독성 있는 리믹스. 내가 좋아하는 장면들이라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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