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영이라... 잡설

청와대가 황우석 시즌2를 찍고 싶은 모양.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는 애초에 없었으나, 이런 짓을 하리라곤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역시 현실은 나의 빈곤한 상상을 가볍게 뛰어 넘는다.

이 참담한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이가 조국이다. 현 청와대 민정수석인 그는 과연 이 사태를 묵인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힘을 보태고 있는 걸까. 황우석 사태가 터진 후, 교내 연구윤리 교육이 절실하다고 판단한 서울대 민교협 소속 교수들은 학부생을 대상으로한 대형 연구윤리 교양강좌를 개설했고, 그걸 주도했던 교수들 중 하나가 조국이었다. 그 자신도 그 강좌에서 표절에 관한 강의를 매학기 담당했고. 그랬던 그가 황우석 사태의 주범 중 하나인 박기영을 재임용하려는 청와대의 고위인사들의 인사검증을 총괄하는 자리에 앉아있는, 이 뭐라 말할 수 없는 아이러니. 다른 민교협 교수들은 이 사태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려나.

문재인이 노무현의 적통은 적통이다.

잡설 잡설

1.
글을 쓰다 보면, 내가 글을 컨트롤하는 건지 글이 나를 컨트롤하는 건지 헷갈리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글을 쓰기 전 대강의 구조와 전개를 미리 머릿속에 떠올리지만, 글이 그대로 진행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애초에 생각한 결론과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재밌는 건 글을 쓰는 와중에 내가 그 논리에 설득이 된다는 것. 분명 글을 쓰고 있는 건 난데, 내가 쓰고 있는 글이 나를 설득하고 있는 그런 상황을 겪고 나면, 기분이 참 묘해진다.

최근에 쓴 서평이 그런 경우였는데, 몇 가지 문제가 있긴 했지만, 읽을 때는 관점도 흥미롭고 논지도 납득이 가서 장점 위주로 서평을 쓰려고 마음먹고 있었으나, 쓰고 보니 엄청난 혹평이 됐다. 서평을 쓰던 과정을 되돌려 생각해보면, 두드러지는 단점을 하나 지적하고 장점으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 단점을 쓰는 와중에 왜 그런 문제가 발생하게 됐는지가 보이게 됐고, 그걸 또 논리적으로 설명하다보니, 결과적으로 서평이 눈에 보이는 단점 하나에서 출발해 저자의 잘못된 전제와 전략을 지적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던 것 같다. 내가 글을 쓴 게 아니라 글의 논리가 날 원치 않는 방향으로 이끌어 간 느낌. 내가 쓴 서평을 읽으면, 내가 책에 대해 느꼈던 처음의 인상과 너무 달라서, 다소 생경하게 느낌이 든다.

그러고 나니, 왠지 저자에게 미안해져서, 주석에다가 - 사실 까고 싶어 깐게 아닌데, 이것 참 저도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요. 책은 재밌게 읽었어요...라고 쓰고 싶은 심정. -_-;;; 그러고보면, 내 글을 혹평을 했던 수많은(?) 이들도 사실 내 글을 그 정도로 싫어했던 건 아니지 아니었을까, 하는 정신승리.....는 하면 안 되겠지..;;;


2.
일 하나를 마무리하면, 예상치 못한 다른 일이 들어오는 그런 정신 없는 나날을 보내다 이제 좀 한가해지나 싶었더니, 벌써 방학이 끝나가고 여름도 끝나간다. 이번 여름엔 공원 산책을 좀더 자주 즐기려 했는데, 별로 그러지도 못해 아쉽고, 운동을 별로 못해서 조금씩 다시 내 리즈 시절로 돌아가려 하는 뱃살들을 보면, 한숨도 좀 나오고, 그렇다.

그래도 바쁜 와중에 큰 모니터도 사고, 책장도 하나 사서 서재 세팅을 좀 바꿨더니, 일할 맛은 난다. 13인치 노트북의 작은 화면에도 별 불만은 없었는데, 눈이 조금씩 침침해지는 것 같아서 우연히 전자제품 매장에 들렀다가 내 눈길을 끈 27인치 커브드 모니터를 하나 구입했다. 모니터가 크니 파티션을 나눠도 마치 모니터 두개를 붙여놓고 쓰는 기분이 든다. 진작에 살걸. 문제는 큰 화면이 생기니 전보다 영화와 드라마를 더 많이 보게 된다는 건데.... 뭐 차츰 줄어들겠지..?


3.
살짝 어설프나, 뭔가 중독성 있는 리믹스. 내가 좋아하는 장면들이라 그런가.

잡설 잡설

1.
캐나다 CBC에서 작년에 방영한 킴스 컨비니언스(Kim's Convenience)라는 드라마를 뒤늦게야 봤다. 원래 오프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상영됐던 연극을 캐나다 제작자가 시즌제 드라마로 만든 것으로, 다인종 국가인 캐나다에서도 비서양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최초의 드라마라는 얘기를 들었다. 아마 제작자로서도 일종의 모험이었을텐데, 시청률은 모르겠으나 평은 준수한 편이다.

점심을 먹으며 단 2편을 봤지만,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특히, "아빠"로 나오는 캐릭터가 꽤나 흥미로운데, 전형적인 중년의 한국인 남성 이민자라고 하기엔 다소 귀엽게 미화되어 있지만, 한국적인 특징을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잘 드러낸다. 그에 비해 "엄마", "아들", "딸" 캐릭터는 (아직까진) 다소 평면적인 느낌.

  


2.
최근에 청탁받은 서평과 관련해 자료를 좀 수집하다가 이상한 글을 보게 됐다. <노동자 연대>라는 처음 들어보는 신문 (잡지?)에 "진화심리학 논쟁"이라는 제하에 실린 몇 편의 인데, 읽다가, 뭐랄까, 이데올로기 논쟁에 갖힌 자들의 답답한 아둔함에 정신이 좀 아득해져왔다.

서평엔 어떤 방식으로든 짧게나마 언급하게 될테지만, 여기서 길게 얘기하고 싶지는 않으니, 딱 한 가지만 지적하자면, 진화심리학 논쟁을 하는 이들은 많은 경우 다윈을 주레퍼런스로 삼고, 누가누가 다윈을 더 잘 이해했는지를 두고 경쟁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들은 찰스 다윈 본인이 19세기 영국에서의 이데올로기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물이었고, 따라서 그의 진화론, 특히 인간(본성)의 진화에 관한 그의 과학적 주장은 그의 정치 성향과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많은 역사가들이 오랫동안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그런 연구가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지만, 이들은 그저 "안보여" "안들려"를 시전할 뿐. 더구나, 이 논쟁(?) 참여자들 중 일부는 역사(의학사)를 전공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서 더 한숨이 나온다.

뭐 하긴, 마르크스를 마치 기독교인들이 예수 모시듯 모시는 이들에게 "창시자 숭배"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


3.
이데올로기에 갖힌 자들을 향한 펫샵 보이즈 (이제는 할아버지?)의 메시지: Go West!


잡설 잡설

1.
한국어로 된 읽을만한 글들이 빠르게 줄고 있다. 소장하고 있는 도서 중 만화책을 제외하고는 한국어로 된 책이 없는 데다가, 가끔씩 들르던 평론가/블로거 사이트에 올라오는 글에서 실망을 하게 되는 빈도가 근래 급격하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문자 중독까지는 아니지만 읽는 게 삶의 가장 큰 낙 중 하나인지라 이러다 문자 가뭄을 겪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영어로 된 좋은 글이야 늘 널려 있지만, 영문 독해 실력은 아직까지 한국어로 된 글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세밀한 뉘앙스 차이까지 읽어 낼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해, 익숙한 주제의 글 외로는 읽는 재미가 좀 떨어진다. 속도가 많이 느리기도 하고.

그래서 드리는 부탁. 혹시 근래에 나온 한국어로 된 책들 중 번역서를 제외하고 "읽어보니 좋았더라"하는 책이 있으면, 가볍게 추천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장르는 상관 없습니다!


2.
과거에 내게 읽는 즐거움을 주던 평론가/블로거들의 비교적 최근 글들에서 실망을 느끼게 되는 이유를 잠시 생각해봤는데, 대강 두 가지 정도로 정리되는 것 같다. 하나는 흐릿하거나 일관적이지 않은 (비평) 관점이다. 하나의 사건이나 하나의 작품은 한 번에 한 관점에서만 조명/비평될 수 있다. 모든 관점에서 옳거나, 모든 관점에서 그른 사건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 작품도, 음식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고전파의 관점에서는 뛰어난 그림은 인상파의 관점에서는 별로 그렇지 않다. 따라서 나는 비평가란 모름지기 자신이 어떤 관점 하에서 세상과 사물을 보고 있는지 끊임 없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노력이 게을러지는 순간, 평론가는 자신이 전지전능한 존재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거나, 사건이나 작품마다 다른 관점/기준을 들이대는 비일관성을 보이게 된다. 물론 본인은 자각하지 못한다. 자신이 '객관적'이라고 착각할 뿐. 이런 착각이 깊어지면, 두 번째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즉, 주장은 점점 강해지고, 그에 대한 근거를 대는 데는 점점 더 게을러지는 것이다. 근거를 대는 것 혹은 대려는 노력이 객관성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게 유리한 근거만을 취사 선택하고 싶은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근거를 찾으려는 노력은 자신의 주장을 적어도 한 두번 스스로 점검하게 해준다는 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근거를 발견하지 못하거나 댈 수 없는 경우, 주장도 하지 않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다.

평론가는 아니지만, 글쓰는 걸 일종의 업으로 삼고 있는 입장에서 위 두 가지는 나 역시도 늘 숙지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3.
그닥 평범하지 않은 인간들이 부르는 '커먼 피플'. 간만에 펄프 픽션이나 볼까나.


대한민국 "인권 연구가"의 현주소 잡설


한국의 1948년생 남성 엘리트는 시대를 앞서가는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동시대의 선각자들이야 그 말고도 많겠지만, 그 주제가 소수자/인권에 관련된 문제들이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젠더 문제에 관심도 없었던 언론사, 정치인들이 얼토당토 않은 비난에 가세하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의 비난은 더 나아가기 위한 극복의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앞으로 '안경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차없이 비난할리 만무하니까요. 한국의 젠더 인식 수준을 '안경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에도 아무런 관심도 없을테니까요. 그래서 너무너무 화가 납니다.


대한민국의 이름 난 "인권 연구가"이자 한국여성민우회 법률 자문위원이신 홍성수 교수님의 목표는 대한민국 인권 수준을 '안경환 수준'으로 올리는 것이다. 대체 '안경환 수준'이라는 게 뭘까. 아마도, 원하는 여성과 결혼하기 위해 혼인증명서 위조 정도는 해도, 그 이상의 몹쓸 짓은 하지 않는, 뭐 그런 사회가 아닌가 싶다. 아마 그보다 좀더 진일보하면, 강제 결혼보다는 약한, 돼지발정제 사용까지만 허용되는 그런 사회겠지.

이런 분들이 이끌고 있는 대한민국의 인권/소수자 운동의 미래는 너무나 밝다. 더욱더 노력해서, 몇 년 안에 인도 정도는 따라 잡도록 합시다, 홍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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