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작두 감상


요새 내 삶의 활력을 주는 오작두
드라마 역사에 남을 수작도 아니고, 내러티브도 여기저기 삐걱거리는, 
전반적으로는 그저 나쁘지 않은 평작 수준의 드라마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러 번 곱씹으면서 내 삶도 함께 반추하게 만드는 고마운 작품이다.

주인공인 한승주와 오작두 그리고 제3의 주인공 조봉식의 인생은 내 세대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일종의 메타포다.
집에서나 사회에서나 이전 세대가 만든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그래서 두 곳 모두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
그럼에도 순수성 대한 감성을 잃지는 않은,
내적으로는 불안하고, 외적으로는 불안정한 세대

이 드라마에 조용필의 <꿈>이 자주 등장하는 게 우연은 아닐 것이다.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인생을 이렇게 잘 묘사한 노래가 또 있었던가.





백현진 - 아구탕에서 나온 네명 감상


아직까지 이 이상의 완성도 높은 "한국적" 전위 예술을 보지 못한 듯.
간만에 들으니 좋은데, 이게 나온지 벌써 10년이나 됐구나.

미투, 그리고 변호사의 '촉' 잡설

한동안 뉴스를 멀리하고 살다 오랜만에 포털에 들어갔더니 '권력 무상'을 느낀 MB의 구속을 포함해 다이나믹한 기사들이 넘쳐난다. 그 와중에 눈길을 끄는 건 역시 미투 관련 기사들이다. 미투 폭로가 나온지 이제 꽤 시간이 지났으니 슬슬 '미투의 변질' 등등의 기사가 나오기 시작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마침 곽도원 씨 소속사 대표라는 임사라 변호사의 기사가 눈에 띄었다. 임 대표는 이윤택 고소인 중 4명이 곽도원을 만나 돈을 뜯어내려는 '꽃뱀' 짓을 했다고 주장했고, 지목을 당한 4명을 포함해 이윤택 고소인 측이 이에 대해 반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임 대표가 녹취록을 이윤택 성범죄 피해자 변호인단에 전달하겠다고 하니, 진실이 곧 밝혀지기를 바란다.

이와 별개로 내가 흥미를 느낀 건 이 사건의 시발점이 된 임 대표의 SNS 글이었다.

변호사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아 (...) 첫 성폭력 피해자 국선변호사가 되었죠. 대전에 변호사 수가 500명이 되가는 상황에서, 신청자는 20명. 그 중에서도 여자변호사는 4명이어서 2년동안 대전 지역 성범죄 사건의 3분의 1 이상이 제 손을 거쳐갔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한달에 50건 이상 사건을 했지만, 정작 저를 지치게 만든 건 업무량이 아닌 피해자가 아닌 피해자들이었습니다.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목소리, 말투만 들어도 이건 소위 꽃뱀이구나 알아맞출 수 있을 정도로 촉이 생기더군요.
(중략) 그제 곽배우가 연희단거리패 후배들(이윤택 고소인단 중 4명)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힘들다 도와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선배로서 도울 수 있습니다. 돕고 싶었습니다. 어젯밤 만나기로 약속했고 약속장소에 나갔는데, 변호사인 제가 그 자리에 함께 나왔단 사실만으로도 심하게 불쾌감을 표하더군요. 그 분들 입에서 나온 말들은 참 당혹스러웠습니다. 곽도원이 연희단 출신 중에 제일 잘나가지 않냐, 다같이 살아야지, 우리가 살려줄게(???!!!!!)
안타깝게도... 촉이 왔습니다.


곽도원 씨와 만난 4명의 "꽃뱀" 짓을 고발하고 있는 이 글은, 사실상 변호사의 글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사실 관계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결여되어 있다. 대신 이 글은 선동가 혹은 사기꾼의 글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양식을 보이고 있다. "나는 진리를 꿰뚫어 보는 특별한 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너희들은 나의 말을 그대로 믿어야 한다," 는 전제가 깔린 일종의 '궁예식 글쓰기'.

변호사라는 양반에 왜 이런 식의 글을 쓴 것일까? 답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본인이 밝혔듯, 임 대표는 "변호사를 그만두고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들어온" 곽도원 1인 엔터테인먼트 회사 대표다. 즉, 그는 곽도원 변호인이 아닌, 곽도원을 상품으로 팔아야 하는 회사 대표로 글을 쓴 것이다. 최근 미투 운동의 가해자로 지목되었다가 무고 증명으로 위기에서 벗어났으나, 여전히 이미지에 금이 가 있는 '곽도원'이라는 상품을 '미투 운동의 피해자'로 재포장해 이미지 개선을 노린 것 아닌가 하는 "촉"이 온다.


마지막으로 임 변호사님의 "촉"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해야겠다. 변호사가 되신 지 2년만에 진짜 성범죄 피해자와 "꽃뱀"을 말투와 목소리만 들어도 구별할 수 있는 "촉"이 생기셨다는 임 변호사님. 사실 그런 "촉"은 법조계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 종사해도 생기게 된다. 나 역시 연구를 할 때 그런 "촉"에 의존해야 할 때가 많다. 사실 연구 가설을 세울 때는 거의 전적으로 "촉"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촉"이 옳은 것으로 증명이 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내가 처음에 가졌던 "촉"은 초기의 제한된 정보로 인해 발생한 잘못된 선입견이었음으로 판명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건 나만 겪는 문제가 아니다. 한 분야에서 수 십년의 경력을 쌓은 내 은사 중 한 분도, 초기 가설이 연구 마지막까지 그대로 유지된다면, 그 연구는 잘못된 것이다, 라는 말씀을 하신 바 있다. 다르게 말하면, 좋은 연구자는 자신의 "촉"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시험해야 한다는 얘기다.

법조계라고 상황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객관적 증거가 아닌, 의뢰인의 "말투"와 "목소리"에 의존해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는 법조인이 좋은 법조인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혹시 아는가. 진실을 감지하는 "촉"이 초인의 경지 이르러, 사건의 진위를 "촉"만으로 정확히 판별할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할는지. 만약 임 변호사님이 그 정도의 '절대 촉'을 가지신 분이라면, 그런 분께서 판사나 검사가 아닌, 일개 소규모 소속사 대표를 하고 있는 건 엄청난 사회적 손실이 아닌가 싶다.


마이웨이 - 두 가지 버전의 전유 감상

섹스 피스톨즈 버전


고박사 버전


신박한 개소리 - "문빠"는 쿤주의자! 잡설



현대 과학철학계의 양대 산맥인 포퍼와 쿤은 과학의 진보에 대해 매우 다른 그림을 제시하였다. 포퍼는 과학적 활동에서 기존의 지배적 이론을 비판하고 반박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혹독한 노력을 강조한 반면 쿤은 과학자들이 "정상 과학(normal science)" 시기 동안 기존의 지배적 이론의 불완전성을 용인하고, 나아가 그런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그 이론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지지하는 모습을 강조하였다(여기서 정상 과학이란 과학자들이 지배적 이론-쿤의 용어를 사용하면 "패러다임(paradigm)"-을 정교하게 다듬는 것을 핵심 과업으로 삼는 과학 활동이다). 과학 이론을 수용하면서 과학자들은 그 이론에 오점이 전혀 없는 것을, 그것이 모든 현상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성공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쿤은 역설한다. 그 이론이 장래에 성공적 이론으로 성장할 희망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과학자들에겐 그것을 수용할 이유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 성공을 실현하는 것은 상당 부분 과학자 자신들의 몫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나는 문빠들이 정치에 관한 포퍼의 관점에 대한 대안으로 쿤의 관점을 취하는 것으로 본다. 쿤의 관점을 받아들여 그들은 문재인 정부가 장래에 사회를 더 민주적이게, 더 공정하게, 더 정의롭게 만들어 나갈 희망이 있는 한 자신들의 지지를 철회하지 않을 것이다. 문빠들은 문재인 정부가 오점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는 것을, 모든 정책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성공적으로 추진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실수나 오류를 용인할 준비가 되어 있고, 그에 대하여 정당하게 제기될 수 있을 법한 비판도 곧잘 무시한다. 나아가 그들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이 많은 부분 자기 자신들의 몫이라 인식하며 문재인 정부를 야당과 주류 언론의 비판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여론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분명 이것은 문재인에 대한 "비판적 지지"라 보기 힘들다. 이렇게 문빠들은 한국 시민 사회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오던 비판적 지지의 전통과 결별하였다.
문빠 현상이 노무현에 대한 집단적 피해망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면서 그것을 "홍위병 정치", "문민 독재", "반지성주의"라고 비판하는 소위 정치 전문가들은 그 현상에 대한 진단에 있어서도 대응에 있어서도 모두 틀렸다. 문빠들은 노무현의 비극적 죽음이라는 뼈아픈 경험으로부터 마땅히 이끌어내야 할 교훈, 즉 비판적 지지의 신화가 폐기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이끌어냈다. (...) 그러한 그들의 지지는 토마스 쿤의 철학에 의해 능히 정당화될 수 있다.


경희대 철학과 최성호 교수의 글이다. 최 교수가 과학철학에 무지해서 이런 뻘 글을 썼느냐? 아니다. 최 교수는 한국의 과학철학자 중 가장 훌륭한 연구 성과를 자랑하는 학자다. 이 신박한 개소리가 주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오늘날의 전문가들은 자기 전공 분야를 한 발작만 벗어나도 평범한 '대중'이 된다. 사실, 이번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평범 이하 수준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그것은 좁은 자기 전공 분야만 깊게 파느라 일반인들과 비교해서도 사회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2. 자기 영역을 벗어난 분야에서 '오피니언 리더'로 목소리를 내고 싶어하는 특정 분야 전문가들은 대체로 본인이 소크라테스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현인'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본인 빼고는 타 틀렸다고 호통치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에게 지면을 내어 주는 언론 (이번 경우엔 <교수 신문>과 <허핑턴 포스트>)이 이런 유아적인 착각을 부채질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니 지금은 '교수' 또는 '박사'란 타이틀이 '현자'와 동급이 아닌 "21세기"임을 잊지 말도록 하자. 최 씨 사례가 잘 보여주듯, 특정 분야에 탁월한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일수록 타 분야에서는 '물 가에 내어 놓은 어린아이'와 같아지는 경향이 있다.



덧1.
'문빠'들을 쿤주의자로 묘사하는 이 신박한 해석을 보고 있자니, 수 년 전에 출판된 철학계 명저가 한 권 떠오른다. 이름하여, <나꼼수로 철학하기>

덧2.
당연한 얘기지만, 저 글이 쿤과 포퍼를 잘 설명하고 있다고 여기면 안 된다. 쿤과 포퍼는 최 씨의 '문빠'기질을 정당화하기 위해 부적절하게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다.

덧3.
정치체제나 제도에 관한 논쟁도 아니고, 한낱 문재인 개인을 빠는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포퍼 vs. 쿤 논쟁을 끌어들이는 최 씨를 보면서 확인할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이니에 대한 그의 아가페적인 사랑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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